
처음 이 뉴스 봤을 때 좀 놀랐습니다. “워렌 버핏이 구글을 샀다고?” 평생 기술주를 멀리하고 코카콜라나 은행주 같은 전통적인 가치주만 고집하던 그 분이 말이죠.
하지만 진짜였습니다. 2025년 3분기에 버크셔 해서웨이가 알파벳 주식 1,780만 주를 매수했습니다. 무려 49억 달러(약 6조 5천억 원) 규모의 포지션을 구축했는데요. 13F 공시로 확인됐습니다.
이건 단순한 주식 매수가 아니라, 버핏이 보낸 신호로 봐야 합니다. 그가 CEO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 추진한 마지막 대형 투자 중 하나니까요. 그럼 도대체 왜 지금 알파벳에 투자한 걸까요?
버핏이 구글을 피해왔던 이유, 그리고 후회
버핏은 과거에 구글 투자를 놓친 걸 공개적으로 후회한 적이 있습니다. 2018년에 그는 이런 말을 했죠. “난 제품이 작동하는 걸 봤고, 그들이 가진 마진도 알았어. 하지만 이게 정말 경쟁에서 살아남을 기술인지 판단할 만큼 기술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어.”
버크셔의 자동차 보험 회사 가이코(Geico)는 구글의 초기 고객이었습니다. 누군가 광고를 클릭할 때마다 10달러씩 지불하면서 말이죠. 그러니까 버핏은 구글의 광고 비즈니스가 얼마나 돈이 되는지 직접 경험했으면서도, 기술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에 투자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오랜 파트너였던 찰리 멍거도 “그냥 구글 주식을 샀어야 했다”고 비슷한 후회를 토로했습니다.
이런 버핏이 이제 와서 알파벳에 투자했다는 건, 근본적으로 생각이 바뀌었다는 뜻이 아닐까요?
사실 이번 투자가 버핏 본인이 직접 결정했는지는 불확실합니다. 그가 고용한 두 명의 투자 매니저, 토드 콤스(Todd Combs)와 테드 웨슬러(Ted Weschler)가 독립적으로 포트폴리오 일부를 운용하거든요. 이 중 한 명이 2019년에 아마존 투자를 시작한 것처럼, 이번에도 그들이 주도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버크셔라는 거대한 배가 움직였고, 그 방향이 알파벳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타이밍이 모든 걸 말해준다 – 3,820억 달러 현금과 CEO 승계
이번 투자의 맥락을 이해하려면 버크셔의 현재 상황을 봐야 합니다. 25년 3분기 말 기준으로 버크셔의 현금 보유액은 무려 3,820억 달러(약 500조 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우리나라 연간 국방예산이 대략 60조 원 정도라는 걸 생각하면 그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버핏은 이 엄청난 현금을 어디에 쓸지 고민해왔습니다. 근데 솔직히 좋은 투자처를 찾기가 쉽지 않았던 거죠. 그는 최근 몇 년간 시장 전반의 밸류에이션에 회의적이었고, 실제로 12분기 연속 순매도 포지션을 유지해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타이밍이 하나 더 있습니다. 버핏은 2025년 말에 CEO 자리에서 물러날 예정입니다. 그의 오랜 부하인 그렉 아벨(Greg Abel)이 후임으로 선정됐고요. 60년 넘게 버크셔를 이끌어온 전설이 마지막으로 남기고 가는 투자 결정 중 하나가 바로 이 알파벳 투자입니다. 이건 단순히 “기술주 하나 사봤어요” 수준이 아니라, 후계자에게 “이게 미래다”라고 보여주는 일종의 메시지일 수도 있습니다.
알파벳이 더 이상 단순한 ‘기술주’가 아닌 이유
버핏식 투자 철학의 핵심은 예측 가능한 현금흐름, 강력한 경제적 해자(economic moat), 그리고 이해하기 쉬운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이제 알파벳은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회사가 됐습니다.
2025년 3분기 실적을 보면 그게 확실히 드러나요. 알파벳은 분기 매출 1,023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돌파했어요. 이건 전년 동기 대비 16% 성장한 수치고요. 모든 주요 사업부문에서 두 자릿수 성장을 달성했다는 점은 놀랍습니다.
구글 클라우드는 3분기 매출이 151.5억 달러로 전년 대비 34% 상승했습니다. 백로그는 1,550억 달러로 전 분기 대비 무려 46% 증가했고요. 백로그는 쉽게 말해 고객들이 이미 계약은 했는데 아직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은, 앞으로 들어올 확정 수익을 의미합니다. 1,550억 달러면 앞으로 몇 년간 구글 클라우드의 매출이 보장됐다는 말입니다.
CEO 순다르 피차이(Sundar Pichai)는 실적 발표에서 “우리는 올해 3분기까지 10억 달러 이상 규모의 계약을 과거 2년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이 체결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게 바로 예측 가능한 현금흐름입니다.
알파벳의 경제적 해자는 더 이상 단순히 ‘검색 시장 점유율’에만 의존하지 않습니다. AI 인프라, 클라우드 컴퓨팅, 유튜브, 광고 플랫폼 등 여러 겹의 방어벽을 쌓아놨습니다. 특히 AI 분야에서 알파벳의 위치는 독보적이에요. Gemini 앱은 월간 활성 사용자가 6.5억 명을 넘었고, 기업 고객들은 Gemini를 통해 매분 70억 개의 토큰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AI 기반 클라우드 제품의 매출은 전년 대비 200% 이상 급증했고요. 이런 숫자들은 알파벳이 AI 시대에 단순히 참여자가 아니라 리더라는 걸 보여줍니다.
애플과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왜 팔았을까?
버크셔가 알파벳을 사면서 동시에 애플과 뱅크오브아메리카 지분을 줄였습니다. 애플 지분은 15% 감축해서 607억 달러 규모로 줄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버크셔 주식 포트폴리오의 거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최대 보유 종목입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3,720만 주를 매각해서 지분율이 7.7%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D.R. Horton(건설사)는 완전히 매각하고 Lennar Corp.(또 다른 건설사)를 늘렸습니다.
버핏은 이렇게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고 있습니다. 애플을 계속 줄이는 건 밸류에이션 부담이라고 보는 의견이 많습니다. 애플 주가가 너무 많이 올라서 더 이상 가치투자 대상으로 보기 어려워진 거죠. 그 자금을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고 판단되는 알파벳으로 옮기는 건 합리적인 선택이에요. 실제로 알파벳의 주가수익비율(PER)은 다른 빅테크 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입니다.
3분기 동안 버크셔는 61억 달러 상당의 주식을 순매도했습니다. 알파벳에 49억 달러를 투자했다는 걸 감안하면, 알파벳이 분기 매수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버핏이 얼마나 알파벳에 투자에 진심인지를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AI와 클라우드, 그리고 투자의 미래
알파벳의 가장 큰 강점은 풀스택 AI 전략입니다. AI 인프라부터 모델 개발, 제품 통합까지 전 과정을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구글은 엔비디아 GPU도 쓰지만 자체 개발한 TPU(Tensor Processing Unit)도 사용합니다. 제미나이 같은 최첨단 AI 모델도 직접 만들고요. 이런 수직 통합이 비용 효율성과 경쟁 우위를 만들어냅니다.
애널리스트들도 이를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BofA는 알파벳에 대해 매수 의견을 유지하며 “검색 가속화와 클라우드 모멘텀이 AI 리더십을 강화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HSBC도 알파벳의 풀스택 AI 전략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검색 및 클라우드 사업 성장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여러 투자은행들이 목표주가를 300달러 이상으로 상향 조정했는데, 실적 발표 직후 주가는 6% 급등하며 270달러를 돌파했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알파벳은 2025년 자본지출(CapEx)을 910억~930억 달러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원래 850억 달러였던 계획을 또 올렸습니다. 2026년에는 이게 더 크게 증가할 예상입니다. 이 엄청난 돈은 대부분 AI 인프라, 즉 데이터센터와 서버에 투자됩니다.
단기적으로는 수익성에 부담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쟁 우위를 만들어내는 투자죠. 버핏이 이런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하는 회사에 베팅한 건, 그가 알파벳의 장기적인 수익 창출 능력을 믿는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투자자들이 주목해야 할 포인트
이 투자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을 정리했습니다
1) 기술주 투자라고 무조건 투기적인 건 아니다
알파벳은 이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 성숙한 기업입니다. 검색 광고라는 돈이 되는 사업이 있고, 클라우드와 AI라는 성장 동력도 있습니다. 유튜브는 또 다른 캐시카우입니다. 이런 다각화된 수익 구조가 버핏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벨류에이션이 중요하다
버핏이 애플을 줄이면서 알파벳을 산 건 상대적 가치를 따진 결정입니다. 같은 기술주라도 가격에 따라 매력도가 달라지는 거죠.
3) 후회를 바로는 것도 투자의 일부
버핏은 과거에 구글을 놓친 걸 후회했지만, 지금이라도 기회가 있다고 판단하고 과감하게 움직였습니다. 이미 95세인데 말이죠.
마치며
알파벳이 버크셔의 10번째로 큰 보유 종목이 됐습니다. 앞으로 이 포지션이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오마하의 현인이 AI와 클라우드의 미래에 베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알파벳입니다.
이게 기술 섹터를 보는 관점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더 이상 ‘기술주’라는 꼬리표만으로 투자를 결정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중요한 건 그 회사가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를 갖고 있고, 예측 가능한 현금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거죠. 알파벳은 이제 그런 회사가 됐고, 버핏의 투자가 이를 확인시켜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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