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이 현실이 된 ‘돈 복사’ 버그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 거래소 앱을 켰는데 내 자산 평가액이 ‘2,000억 원’으로 찍혀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심장이 멎을 듯한 이 상황이 지난 2월 6일 저녁, 국내 2위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에서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단순한 전산 오류라고 치부하기엔 그 규모가 너무나 거대했습니다. 무려 60조 원. 대한민국 1년 예산의 10%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순식간에 개인 계좌로 뿌려졌습니다.
커뮤니티는 순식간에 마비되었고, 비트코인 시세는 요동쳤습니다. 누군가는 “로또 맞았다”며 환호했고, 누군가는 거래소 파산을 걱정하며 공포에 떨었습니다. 이번 사건은 가상자산 시장 역사상 가장 황당하면서도, 거래소 시스템의 치명적인 약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로 남게 됐습니다.
도대체 그날 밤 빗썸 서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오늘은 이번 사태의 정확한 타임라인과 ‘유령 코인’ 논란, 그리고 벼락부자가 된 줄 알았던 이용자들이 마주하게 될 법적 현실을 낱낱이 파헤쳐 보겠습니다.
1. ‘2,000원’이 ‘2,000 BTC’가 되기까지: 사건의 재구성
모든 사단은 아주 사소한 실수에서 시작됐습니다. 2026년 2월 6일 오후 7시경, 빗썸은 랜덤박스 이벤트에 당첨된 이용자 695명에게 소정의 리워드를 지급할 예정이었습니다. 당첨금은 1인당 최소 2,000원에서 최대 5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담당 직원이 지급 단위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릅니다. 원화(KRW) 단위 대신 비트코인(BTC) 단위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 끔찍한 입력 실수로 인해 2,000원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2,000 BTC가 입금됐습니다. 당시 비트코인 1개 가격이 약 9,800만 원이었으니, 1인당 약 1,960억 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이 송금된 셈입니다.
잘못 지급된 비트코인의 총량은 약 62만 개, 원화 가치로 환산하면 60조 원이 넘습니다. 이는 빗썸이 실제로 보유하고 있던 비트코인 수량(약 4만 2천 개)의 14배가 넘는 규모였습니다. 사건 발생 30분 만에 빗썸은 긴급히 거래와 입출금을 중단했지만, 이미 일부 발 빠른 투자자들은 코인을 매도하거나 외부 지갑으로 이체를 시도한 뒤였습니다.
2. 없는 코인을 어떻게 보냈을까? ‘장부 거래’의 민낯
이번 사태에서 대중이 가장 충격을 받은 지점은 “빗썸이 가지고 있지도 않은 코인을 어떻게 지급했느냐”는 것입니다. 빗썸의 창고(콜드월렛+핫월렛)에는 4만 개 남짓의 비트코인밖에 없는데, 어떻게 62만 개를 고객들에게 나눠줄 수 있었을까요?
여기서 가상자산 거래소의 작동 방식인 ‘장부 거래(Ledger Trading)’의 비밀이 드러납니다. 우리가 거래소 화면에서 보는 숫자는 블록체인상의 실제 코인이 아니라, 거래소 데이터베이스(DB)에 기록된 ‘숫자’에 불과합니다. 즉, 빗썸 내부 전산망 안에서는 실제 보유량과 상관없이 숫자를 입력하는 대로 자산이 생성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과거 2018년 삼성증권 유령 주식 사태와 비교합니다. 당시에도 존재하지 않는 주식이 전산상으로 발행되어 시장에 매물로 쏟아졌습니다. 이번 사건 역시 블록체인의 검증 없이 중앙화된 거래소의 장부 조작만으로 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는 점이 입증되면서, ‘탈중앙화’라는 가상자산의 철학이 무색해졌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3. “이미 팔았는데 어쩌죠?” 법적 책임과 반환 의무
계좌에 들어온 2,000 BTC를 보고 흥분하여 급하게 매도한 이용자는 어떻게 될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이 돈은 절대 내 돈이 될 수 없습니다. 민법상 ‘법률상 원인 없이 타인의 재산으로 이익을 얻고 이로 인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이익을 반환해야 한다는 부당이득 반환 의무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빗썸 측은 전산 오류를 수정한 뒤 잘못 지급된 코인을 ‘회수(Rollback)’ 처리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매도해 현금화했거나 외부 지갑으로 출금에 성공한 1,788 BTC(약 1,600억 원 상당)는 강제 회수가 불가능합니다. 이에 대해 빗썸은 반환을 거부하는 이용자를 대상으로 민사 소송을 진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판례를 보면 착오 송금된 돈을 임의로 사용한 경우 횡령죄가 적용될 수 있으나, 가상자산의 경우 법적 지위 논란으로 형사 처벌(배임/횡령)까지 갈지는 법리적 다툼의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민사상 반환 책임은 피할 수 없으며, 소송 비용까지 물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4. 억울한 피해자들: 패닉셀 보상 정책
이번 소동의 가장 큰 피해자는 오입금과 상관없는 일반 투자자들입니다. 60조 원 물량 폭탄이 터졌다는 소식과 함께, 오지급받은 물량이 시장가로 쏟아지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순식간에 8,100만 원대까지 급락(-15%)했기 때문입니다. 영문도 모른 채 공포에 질려 헐값에 코인을 던진 ‘패닉셀’한 투자자는 막대한 손해를 입었습니다.
다행히 빗썸은 발 빠르게 보상안을 내놓았습니다. 사고 발생 시간대(2월 6일 저녁 7시 30분~45분)에 비트코인을 매도한 회원에게는 매도 차액 전액과 추가 보상금 10%를 더해 총 110%를 보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해당 시간대 접속 기록이 있는 모든 회원에게 2만 원 상당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투자자 이탈을 막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해석됩니다.
Q&A: 빗썸 사태, 궁금한 점 3가지
Q. 빗썸이 망할 수도 있나요?
A. 현재 빗썸이 감당해야 할 실제 손실액은 외부로 유출되어 회수하지 못한 약 130억 원(125 BTC) 규모와 패닉셀 보상금 정도입니다. 빗썸의 연간 영업이익을 고려할 때 이 정도 금액으로 파산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다만 금융당국의 제재와 신뢰도 하락으로 인한 장기적인 타격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Q. 오지급된 비트코인으로 다른 알트코인을 샀다면요?
A. 빗썸 내부에서 거래했다면 거래 기록을 취소(롤백)해 원상 복구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수수료나 시세 차익 등에 대해서는 복잡한 정산 과정이 필요하며, 결국 부당이득으로 간주되어 회수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Q. 해외 거래소로 보냈으면 못 찾지 않나요?
A. 블록체인은 모든 이동 경로가 추적됩니다. 빗썸은 해외 거래소와 협조해 해당 지갑을 동결(Freeze) 요청할 수 있습니다. 익명성이 강한 개인지갑으로 보냈다 하더라도, 현금화를 위해 다시 중앙화 거래소로 입금하는 순간 적발될 수 있습니다.
시스템 리스크, 결국 내 자산은 내가 지켜야
이번 빗썸 60조 원 오입금 사태는 잘못 입력한 인간의 실수가 금융 시스템을 얼마나 쉽게 뒤흔들 수 있는지 보여줬습니다. 또한 우리가 믿고 거래하는 중앙화 거래소의 숫자가 실제 자산과 괴리될 수 있다는 ‘장부 거래’의 위험성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습니다.
투자자로서 우리는 이번 사건을 통해 두 가지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첫째, 거래소의 전산 오류로 들어온 돈은 ‘공짜 점심’이 아니라 ‘독이 든 성배’라는 점입니다.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소송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둘째, 거래소 한 곳에 모든 자산을 보관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콜드월렛이나 분산 보관을 통해 시스템 리스크에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금융당국이 현장 검사에 착수한 만큼, 향후 내부 통제 시스템 강화와 관련된 강력한 규제가 예상됩니다. 이번 사태가 가상자산 시장이 한 단계 더 성숙해지고 안전해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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